<서울 생활을 차곡차곡 모은 방>
안녕하세요. 저는 현재 민달팽이 주택협동조합의 달팽이집 5호에서 7명의 사람들과 함께 거주하고 있습니다. 저희 집은 2층의 단독주택이고 마당도 있어요. 제 방은 2층에 있는 2인실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혼자 사용하고 있어요. 예!! 이 곳은 서울에서 저의 첫 자취방인데요, 눈물나는 사연을 거쳐 민달팽이 주택협동조합을 알게 되고, 쉐어하우스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저는 서울에 온지 4개월 정도 밖에 되지 않았는데요, 서울에는 워킹홀리데이 개념으로다가 왔습니다.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아서 외국에 간다고 하면,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저의 경우엔 일도 하고, 여행도 하면서 사람들과 어울리고, 그 나라의 분위기를 느끼는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로다가 서울에서 한번쯤 살아보고 싶어서 왔습니다. 아무래도 서울에 큰 행사와 공연, 강연 등이 모두 있으니까요.
지금은 코로나로 인해 그런 것들이 위축되어 있지만, 그래도 나름 열심히 서울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면서 즐겁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증거들이 방 곳곳에 쌓이고 있어요. 그 자취를 구경해보실래요?
여러 행사에 참여해서 받은 각종 팜플렛과 기념품들을 모아서 꾸민 네트망이에요. 어릴 때부터 이상하게도 저런 기념품들을 버리지 못하겠더라구요. 특히 공연이나 관광지 입장 티켓!! 본가에도 중학생때부터 모은 기념품들이 2박스가 넘는데, 여기서도 네트망에는 가볍고 예쁜것들 위주로, 책장에는 책자와 같은 무거운 것들 위주로 모으면서 추억들을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코로나로 인해서 대부분의 행사들이 온라인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오프라인 행사들이 더욱 소중했어요. 서울에는 다양한 주제의 연극공연이 많아 거리두기 단계가 격상되기 전까지는 자주 보러다닐 수 있었습니다. 네트망은 옷장옆면에 걸어놨는데요, 작은 방에서는 이렇게 자투리 공간을 사용하는 것이 팁이라면 팁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곳은 주렁주렁 걸어놓은 네트망 옆 자리입니다. 네트망에 다 담지 못한 큰 포스터와 엽서를 붙여놨어요. 특히 강유가람 감독님의 <이태원>이라는 작품을 보고 나서 포스터가 마음에 들어 KT&G상상마당에서 보고 가지고 왔어요 포스터에 영화 내용과 분위기가 다 담겨있어 고개를 들어 포스터를 볼 때마다 영화 속 장면들이 떠오릅니다. 또, 영화를 보러간 날의 시간들도 생각이 나서 웃음 짓게 됩니다. A3 이상 사이즈의 포스터는 부담스러운데 A4사이즈는 벽에 붙이기도 좋아요. 이 규격에 다른 마음에 드는 영화 포스터가 있으면 또 가지고 와야겠어요.
제가 침대 다음으로 가장 오랜 시간 머무르고 있는 책상입니다. 제 것으로 주어진 책상 하나는 때로는 화장대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공부를 하는 공간, 또 때로는 영화를 감상하는 공간이 되기도 합니다. 서랍이 따로 없어 책상위에 물건들을 잔뜩 놔뒀지만, (다들 알다시피) 모두 저만 아는 제자리가 있습니다.
책상 정면으로 남향 창문이 나 있고, 2층이어서 현관도 훤히 보이기 때문에 방 안에서도 밖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잘 보입니다. 외출 전에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옷두께를 보며 겉옷을 챙길지 말지 정하기도 합니다. 또 버스가 끊긴 새벽에 창문을 열고 책상에 앉아 음악을 들으며 글을 쓰거나 책을 읽는 시간이 저의 최애시간입니다. 지금은 비까지 추적추적 내리네요. 감성터지는 새벽을 보낼 수 있는 최적의 공간입니다.
이렇게 창문으로 밖이 보여요! 정면으로 걸리는 건물이 없이 틔여있어서 좋아요.
저의 취미는 재봉틀로 옷이나 소품을 만드는 것이에요. 그래서 집을 구할 때 재봉틀을 사용해도 되겠냐고 식구들에게 여쭤보고 가지고 왔어요. 다행히도 방에서 살살 돌리면 소리가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아 낮 시간에 쓰고 있어요. 식구들의 바짓단도 줄이고, 얼마전에는 겨울맞이 방한 마스크도 식구들과 함께 만들어서 그때 사용했어요. 제 방이 원래 2인실이어서 책상이 두 개인데, 아직 룸메가 들어오지 않아서 그 책상에 놔뒀어요. 보통은 필요할 때만 꺼내서 쓰고 있습니다. 꾸준히 뭔가를 잘 못하는 제가 그나마 꾸준히 하고 있는게 재봉하는 것이에요. 마스크도 사실 사서 쓰는 것이 비용도 적게들고 편하지만, 만드는 재미를 포기하지 못해 결국 만들었습니다. 조만간 버킷햇도 만들 예정이에요. 귀찮음 때문에 겨울이 지나기 전에 완성할지는 모르겠습니다.
달팽이집에와서 첫 번째로 만든 것이 의자의 등받이와 방석이에요. 방에 있는 의자가 딱딱해서 오래 앉아있기 힘들더라구요. 그래서 재봉틀로 만들어서 잘 사용하고 있습니다. 원단도 예쁘지 않나요?
여기는 침대 옆 공간인데요, 빨간 선풍기가 이야기의 주인공이에요. 달팽이 5호집은 거실에만 스탠드 에어컨이 있어서 여름엔 방안에 선풍기가 필요했어요. 머리 말릴 때도 필요했구요. 근데 보통 많이 쓰는 큰 선풍기는 자리 차지도 많이 하고 무엇보다 이사갈 때 옮기기 불편할 것 같았어요. 그래서 당근마켓으로 미니 선풍기를 저렴한 가격에 샀는데, 서울에 와서 산 이 방의 물건 중에 제일 만족도가 높은 제품입니다. 일단 예쁘고, 협탁에 올려서 쓰니 머리 말릴 때 높이도 저한테 딱이에요.
이렇게 쓰고 나니 방의 모습이 철저히 저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는 것 같아요. 요즘 트랜드의 감성을 담은 방이 아니어서 소개글을 보낼까 말까 고민했는데, 트랜드 반영없이 마이웨이로 꾸민 방 또한 저의 성격을 반영한 것 같아 재밌네요. 각자의 스타일대로 꾸미고 생활하는 다양한 방의 형태를 구경하고 싶어졌어요. 소소한 팁도 얻어갈 수 있으면 좋겠네요. 코로나로 직접 집들이를 가지는 못하고 랜선으로 하지만 이 만으로도 연결되어있음이 느껴집니다.
그럼 이만 달팽이 5호집에 사는 저의 랜선 집들이는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