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선집들이

<11번째 소개글> 혼자만의 공간, 우리가 함께하는 안전함

안녕하세요 응암 달팽이집에 사는 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 회원조합원 김혜민입니다.

달팽이집 5호 사회주택에서 3년 6개월 살았어요.

사회주택인줄 알고 산건 아니고 민달팽이에서 운영하는 집이래서 안전할꺼라 기대하고 들어갔어요. 근무지가 근처여서 오래 살다가 올해 5월에 근처 달팽이집으로 이사했어요. 셰어하우스 생활을 오래 하다보니 혼자 살고 싶어지더라고요.


다시 민달팽이에서 살겠다고 생각한 무의식 속 이유는 안전이었어요.

옆집, 아랫집, 건물 사람들 다 아니까 원룸에서 현관문 열고 나올 때 안 무서운거, 내 보증금 날아가지 않을꺼라는 믿음. 그 외에 물건이나 음식을 나눌 수 있다는거, 이젠 민달팽이 내에 알게 된 친구들이 많다는 거는 덤이었고요.


집보기 때 본 것보다 이삿짐을 옮기니 좀 더 공간이 넓고 아늑하게 느껴졌어요.

이젠 정말 내 살림으로 채우고 싶어서 공간박스도 다 버리고 정식으로 옷장을 사고 책장을 사고 서랍장을 사고 매트리스도 새로 구입했어요. 몇백만원의 예산이 들었지만 제대로 된 나의 공간과 살림을 더 이상 미룰 수 없었어요.


예쁜 커텐에 대한 로망이 있어서 5년 전에 사두었는데 이제야 자리를 잡고 제대로 쓰네요. 여름에는 종종 환기를 했지만 가을부터는 창문도 커텐도 열어본적이 없네요ㅋ

책장과 서랍장, 식탁은 원목으로 하고 옷장은 한샘에서 했어요. 사실 서로 그닥 어울리지 않지만 오래 쓰고 질리지 않을 것으로 구매했어요. 한샘 옷장은 가격대비 질이 높은 건 아니지만 5년 후에 이사를 하더라도 같은 디자인이 있을 것 같아서 구매했어요. 구성은 다르고 디자인이 비슷한 것으로 필요에 따라 여러 개 붙일 수 있다는게 장점이라고 생각했어요.


전에 살던 달팽이집도 주방이 넓어서 요리를 자주 해먹었지만 냉장고의 지분이 적어서 맘껏 식재료를 사기 어려웠어요. 새 집을 찾을 때 조건이 싱크대가 넓었으면 했는데 혼자 쓰기엔 적당해서 이 집을 선택했어요. 약 400리터 가까운 냉장고를 새로 구입하고 집들이를 감안해서 4인용 고무나무 식탁을 구입했어요. 며칠 밤을 새서 식탁을 몇백개 본 것 같아요. 실물을 안 보니 알 수가 있어야 말이지. 오늘의 집 앱에 가입해서 산 것도 여러개에요.

엄청 멋진 의자 두 개와 에어프라이기, 계란찜기, 전기포트, 다과세트, 엔틱 그릇과 컵, 화분 등등 친구들이 새 집 살림 장만에 많은 보탬이 되어주었어요. 집들이할 때는 음식 차려내고 같이 노느라 사진이 없네요. 가고 나서 산더미같은 설거지 하고 나면 녹초 크크 그래도 매일같이 도시락을 싸고 행복한 주방에서의 시간을 6개월 정도 보낸 것 같아요. 요새는 집에 가면 잠만 자요.


커뮤니티실에서 곧잘 모여 노는데 하나씩 먹을 것을 나누자고 가져오면 이렇게 식탁이 풍성해져요. 처음엔 약간 서먹서먹 어색했는데 여러번 밥 먹다보니까 꽤 친해진 것 같아요. 같이 사는 사람들이 다 좋은 것 같아요.


주방에서 창문 열면 보이는 풍경이에요. 같은 라인 사는 친구가 일출에는 더 예쁘다는데 그렇게 일찍 일어나 본 적이 없네요 ㅋ ㅋ 날씨가 맑은 날은 맑은대로 흐린 날은 흐린대로 북한산이 보이는 이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요. 이 집에서 이런 풍경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풍족해져요.


저는 꼭대기층에 살아서 옥상에 자주 가는데 날씨가 좋으면 꼭 올라가는 편이에요. 일몰도 예쁘고 구름도 멋지고 그냥 다 좋아요. 주말에 올라가보면 몇몇씩 모여서 차 한잔 마시고 있기도 하고 사람들이 널어둔 빨래가 참 평화로워 보이더라고요.


같이 커뮤니티비를 모으고 반상회를 해서 집의 운영과 관련한 의사결정을 하는데 옥상에 빨래줄이 없어서 제가 기술자인 친구를 불러서 재료값만 주고 빨랫줄을 달았어요. 친구에게 고맙기도 했고 사람들이 빨랫줄에 대한 필요가 높았던터라 잘 쓰여서 볼 때마다 뿌듯해요.


커뮤니티실에 있는 티비에 넷플릭스가 깔아져있어서 주말에 한번씩 티비 보러 가는데 지난주말엔 나의 문어 선생님을 봤어요. 바닷속 탐험이 무척 즐겁고 감동적이었어요. 혼자서는 이렇게 큰 티비는 엄두도 못 낼텐데 맨날 핸드폰 화면으로 보다가 티비로 보니까 좋더라고요.

층간 소음에서 좀 더 자유롭고자 꼭대기층으로 왔는데 옥상에 떨어지는 빗소리며 엘리베이터 소리, 옆집과 아랫집에서의 층간 소음이 어려울 때도 있어요. 그래도 밤 12시 이후 소음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는 관계라서 다행이고 건물 안에서의 룰을 이야기할 수 있어 좋다고 생각해요.

방을 잘 꾸미고 싶었는데 꾸미려면 공간이 넓어야 하는 것 같아요. 쇼파도 하나 놓고 싶고 스툴도 놓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필요한 것만 넣기도 바쁨 ㅋㅋㅋㅋ

결론: 최고의 DIY는 청소인 것 같아요 ㅋㅋㅋㅋㅋㅋㅋㅋ

 

집들이가 끝난 시점부터는 혼자만 쓰는 공간이 되어 제자리에 물건을 두지 않고 있고요. 옷을 벗으면 바닥에 그대로 두었다가 세탁기로 보내고 설거지는 며칠 미루는 것은 보통이지요. 예쁜 그릇 써서 식사를 차려먹기보단 주로 사먹게 됩니다. 머리카락만 겨우 주우며 살고 있으니 예쁘게 해둔 양초며 화분이며 먼지만 쌓여갑니다. 따뜻하고 아늑한 혼자만의 공간이 있어서 다행입니다. 바깥에 산이 보여서 숨을 쉬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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